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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10/16
웃음은 나지만 끔찍했던 마지막 밤이 떠오른다. 반나절을 수영으로 보내버렸고 피부는 까맣게 탔고 도도도 싱가포르로 돌아갔다. 오늘 밤이 방콕에서의 마지막 밤이라는 사실도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전부터 가기로 했던 곳들을 가기로 했다. 그중 에드 히어 블루스 바가 가장 기대됐다. 방콕으로 떠나오기 전 거의 유일했던 계획인 매일 밤 라이브 바, 재즈바에 물개처럼 늘어져있는 것. .. 결국 그동안 못 가고 마지막 날 밤에 누리게 되었다. 여름밤과 블루스와 술과 낯선 사람들.. 나열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한국에는 각을 잡고 가야 하는 재즈바는 많지만 소탈하고 자유로운 라이브 바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잘될까? 글쎄, 이 부분도 방콕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런할 수 있는 문화 같다. 컨트리, 블루스 음악도 정말 좋아하는데 이런 음악엔 춤바람이 날 수밖에 없다. 이곳의 첫 방문이라 적응이 필요했는데 좁은 자리에 낯선 사람들과 합석하여 앉은 데다가 흔들리는 작은 탁자 위의 술잔들을 깰까 봐 몸이 긴장되어 있었다. 안에서 음악을 들으며 술을 마시다가 바깥으로 나왔는데 바깥이 더 편하면서 자유롭고 좋구나.. 싶었다. 만약 또 갔다면 바깥에서 이미 춤바람 났을 것 같다. 솔직히 노래 너무 신났는데 다들 어떻게 참지? 여하튼 내 적응이 끝나자 12시가 되어서 공연도 끝이 났다. 이곳에서 술을 마시고 발마사지로 하루를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숙소에서 산뜻하게 마시려고 산 유자맛 호가든도 호텔 냉장고에 있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어떤 한 사람을 만나면서 계획이 전부 흩어지고 그 웃음이 나면서도 끔찍했던 카오산 경험이 시작되는데..망고에 미친 소윤씨..
소윤씨가 서보라고 해서 서봤는데 당장 마이크 잡고 노래 시작해도 되게 생겼다.
비행기는 16일 오후 6시에 방콕-다낭, 다낭-인천으로 경유하는 코스로 13시간 정도 소요될 예정이었다. 다음날. 공항으로 향하기 전까지 채소가 딱 한 군데 못 가본 사원을 가기로 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짐을 펼치고 지저분하고 중구난방 하게 숙소를 사용하는 것을 정말이지 좋아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내가 묵고 있는 방이 짐으로 잠식되어 지저분해지는 것이 싫은 것 같다. 그래서 이런 부분에서는 호스텔에서 생활하는 쪽이 편하다. 나는 평소처럼 수시로 짐을 정리해서 사용할 것만 꺼내고 집어넣어서 그리 정리할 것이 많지는 않았지만 (사실 구매한 물건 제외하고는 짐이 간결했다) 또 새벽에 짐을 정돈해두어 다음날 체크아웃하기가 아주 아주 편리했다. 이번 여행에 나의 짐 컨트롤이 만족스럽다.
체크아웃 수순을 밟은 후에 또 커피 시간을 가졌다. 역시나 맛난 커피. 그리고 커피집 맞은편에 사람이 많았던 국숫집이 있길래 가서 먹었다. 토핑도 많고 국물도 맛있었다. 그런데 면을 씹고 놀랐다. 끈적끈적 쫄깃 탱글 했다. 처음 먹고 낯가렸으나 먹을수록 정말 맛있었다. 한국에 와서도 생각이 난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은 한국인들에게 끈적 국수로 유명한 곳이었다.맥주를 어젯밤에 마시려고 사둔 건데 어제 만난 경태 씨의 방콕 로컬 장소 소개로 인해 귀가 시간이 많이 늦어져 못 마셨었다. 그래서 체크아웃하면서 가방에 챙겨 나와서 페리에서 마시기 시작했다. 페리는 금방 도착해버려서 남아있는 맥주는 굳이 사원 앞에서 심술 난 표정으로 원샷 때리기. 못된 심보 1
그리고 워낙 다들 아는 사실이지만 방콕에 있는 사원에 방문할 때는 노출이 심하거나 어깨가 드러나는 의상이면 출입이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갖고 있던 숄 하나씩 챙기긴 했는데 흥미로운 순간을 포착한다. 아니 글쎄 같은 페리에 타고 사원에서 내리던 스님들이 전부 승복을 입고 있었는데 되게 예쁜 주황색에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복장이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입장하려면 어깨를 드러내면 안 된 다했는데 그럼 우리도 숄로 어깨 한쪽만 가려도 되는 건가? 만약 이거 안된다고 하면 다 덮으면 되지! 해보자! 되게 궁금해! 라고 호기심이 발동했고 당당하게 둘이서 한쪽씩 내놓고 입장권을 구매했는데 역시나 어깨 가리라고 해서 노잼이 되었고 어깨 하나 덮었다고 사원을 도는 내내 더웠다.
외국인 둘이서 굳이 어깨 한쪽씩만 덮고 들어가려고 하는 모습이 얄미웠겠지만 재밌는 실험이었는걸요. 못된 심보 2맥주를 .. 조금.. 마셨어요..
사실 왼쪽 무릎 수영하다가 다쳐서 절뚝거리는 거고 취한 거 절대 아닙니다. 누가 사원에서 취하나요? 저는 심지어 사씨라고요.왓아룬에 가시면 제 옆에 있는 소윤이가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어준답니다.. … 그만
주변 시장을 들렀다. 태국 사람들의 생활이 묻어있는 활기찬 시장. 소윤이는 창이나 싱하가 있는 티셔츠를 사고 싶었는데 이 시장은 정말 현지인들의 장소라서 그런 티셔츠나 기념품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일상복들과 그들이 매일 먹는 음식들 시장 안에서 유명한 디저트 집들.. 원하는 물건은 구경하지 못했지만 진귀했다. 배가 고팠더라면 뭐라도 사 먹어봤을 텐데 아쉬웠다.
어제 블루스 바에서 만난 방콕에서 살고 계신 경태 씨의 추천으로 타본 2층 페리. 일반 페리는 16밧, 2층 페리는 30밧인데 한 번쯤 타볼 만하다. 조금 더 길게 즐겼으면 더 좋았겠다.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그린 카레는 시간 관계로 인해 카오산에서 눈앞에 있던 노상에서 먹었는데 망했었다. 음식이 외친다 이렇게 난 짜고! 달고! 매워!.. 이거 먹고 탈 나는 것 아닌지 먹으면서도 생각했다.
다낭으로 가는 비행의 항공사는 베트남의 항공사인데 즐거웠다. 비행시간은 고작 1시간 40분인데 기내식 비슷한 것도 주고 커피도 주고 생라임을 띄운 티도 주고 맥주도 준다. 예전에 파리 갈 때 탔던 에어프랑스가 생각났다. 승무원들은 무척 바빠 보였지만 되게 러프한데 잘 갖춰져 있었고 우리는 그래서 신이 나게 다낭에 도착했다. 그리고 베트남의 이미지도 좋아졌었다. 잠시.
다낭 공항에서 우리는 5시간을 대기해야 했는데 비가 왔고 그때는 20시쯤이었다. 다낭 공항이 많이 작기도 하고 구글맵을 켜보니 도보 10분 내외에 카페나 식당이 많았다. 그래서 우리는 다낭을 한 바퀴 돌기로 결정하는데.. (잘못된 선택.)
내가 베트남을 잊고 있었다. 구글맵과는 다르게 캄캄하게 닫혀있는 가게들, 틈만 나면 들리는 클락션 소리, 온갖 폐기물이 쌓여있는 거리, 낮은 상과 의자,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베트남 아재들.. 하노이를 여행했을 때는 그래도 쾌적한 편이었구나라고 느꼈다.
우리는 공항 바깥으로 나가보기 위해서 거금을 내고 짐도 보관했고 환전도 했다. 그 모든 것이 불쾌하고 아쉬웠던 짧은 외출..
결국 공항으로 돌아와서 동을 소진하기 위해 베트남 쌀국수를 먹는데 그 가게마저도 불쾌했지만 맛나게 먹었다. 다낭은 패키지로. 그리고 베트남은 자연 보러 가는 거지.. 베트남에 가보고 싶었다던 소윤이는 거의 충격을 먹고 너덜너덜해져서 돌아왔다. 다낭.. 어렵네? 그렇게 어려운 기분으로 한국까지 잘 왔다.집에 도착해서 동생과 저녁을 먹으면서도 아무렇지 않다가 왠지 피곤해서 일찍 잠이 들었고 아침이 되었는데 열이 나고 춥고 두통이 심했다.
코로나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