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saji 2022. 11. 25. 12:52

이상형이 어떻게 되냐는 질문을 종종 받곤 한다. 단순 타인에 대해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 질문을 건네곤 하는 것 같다. (나는 관심이라는 것이 잘 없어서 그 질문을 받고도 되돌려줄 생각까지는 못한다는 것을 오늘 글을 적으며 알았다.) 어쨌든 나는 불과 몇 달 전까지 이상형이 딱히 였다. 이상형이(끌리는 사람이) 없다기보다는 거창하게 정해놓거나 명칭, 개념을 붙일만한 것이 없어서 그 질문을 받으면 나는 “글쎄. 그냥 끌리는 사람?. 거기다 이야기가 매끄럽게 이어지면 좋고.“ 라고 답했다. 내 답만 봐도 이상형이라는 것에 대해 결코 시간을 할애해서 깊이 생각해본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내가 이상형에 대해 딱히 별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 자체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대답해도 그 누구도 항의를 걸거나 더 말해보라며 조르거나 하지 않았다. (동성 이성 할 것 없이 보통 물어보는 이유는 본인의 이상형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였을까.) 그렇게 지내다 올해 여름 이상형이 어떻게 되냐는 질문을 받았고 역시나 뭐 “딱히..” 라고 이어나가며 대답을 했다. 그래도 구체적으로. 끌리는 스타일이 있을 것이지 않냐. 눈이 높은 거냐. (눈이 높은 거냐는 말엔 왜 이리 진상규명을 하고 싶은지) 말 좀 해봐라. 아니 말할 게 없다니까? 그런데 초롱한 네개의 눈동자. 질문 폭격과 잘 듣겠다는 몸의 기울임이 느껴져서 거기서 최선을 다해 더 생각해봤다.
“음.. 자연스러운 사람? 겉모습으로 어떻게 보이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 하지만 지적 허영심은 좋아.”
오! 나도 이게 되네 생각하다 보니까 내 이상형을 말할 수 있네!
그런데 내가 입을 열기를 기대하던 양쪽의 아이들은 경청을 하면서도 약간 실망한 투였다. ”그렇구나 그런데 외적인 건? 키라든지.. 역시 눈이 높은 거야?“, ”이래놓고 다 잘생긴 사람 좋아하더라.“
진짜 없습니다. 딱히. 그리고 그것에 대해 생각할 생각이 없습니다.
내가 앞에 있던 내 친구에게 물어봤다. “내가 그동안 만난 사람들 정말 제각각이지 않니?”, “내가 눈이 높아?” . 오랜 시간동안 봐온 친구는 역시나 음 절레절레.
어쨌든 그때 그 새벽에 나눈 이야기들을 나는 집에 와서 자리를 잡고 자세를 바르게 하고 생각해봤다. 생각할 생각이 생긴 이유가 이상형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생겼다기보다 나는 늘 어떤 질문을 받았을 때, 내가 어떤 것에 대해 탐구하거나 분명하게 대답을 내놓고 싶어 했다. 주관이 어디에나 있고 싶었다. 그렇게 맥북을 열고 노트를 켰다. 제목 <이상형>
쭉쭉 적어나갔고 생각하다 보니 이상형에 대한 구색을 갖춰갔다. 눈길이 조금 더 가는 외모라든지 어떤 행동에 끌린다든지. 그 메모를 토대로 그날 이후에 이상형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대사처럼 읊었다. 자, 그리고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 그 이후에 이상형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여전히 대사처럼 읊던 난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형에 대해 딱히 관심이 없는 것이 맞다. 이상형을 정해놓으면 내 잣대가 한정적이고 좁은 시야를 갖게 되는 것 아닐까? 적어도 나로서는 그러하다. 사람은 제각각 고유적이고 전부 다르다. 어떤 사람에게는 기준점을 둬서 아무나 만나는 불상사를 막는 시간 낭비 방지 차원의 이상형을 정해놓을 수도 있는 것이고, 어떤 사람은 이러이러한 사람이 너어무 좋아. 이런 사람 아니면 도무지 마음이 가지를 않아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고 이 사람은 내 이상형과는 다른데 만나다 보니 좋네? 싶은 것도 있는 것이고.
이상형이라고 무조건 그런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고 단순한 이성에 대한 청사진쯤 되려나.. 난 그 청사진이 없는 것이 아니고 분명 좋아하는 성향이나 결은 있지만 나는 그것을 입 밖으로 뱉기 어렵다. 내 안에서도 잘 모르겠기 때문. 그렇다고 줏대가 없다기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뚜렷하다. (이 부분은 동성 이성 모두. 친구를 사귀든 애인을 사귀든 모두.) 나는 늘 어떤 것에 대해 신념을 견고하게 다져진 것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러하다. 그런데 그러한 신념에 따라오기 마련인 오만을 제어할 수 없다면 우리 시야는 극히 좁아진다. 신념엔 오만이 없어야 순기능을 한다. 그래야지만 매번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이상형에 <딱히>라는 답을 하면 이런 애들이 눈이 높다는 반응에 억울함을 가지고 진상규명을 하기 위해 거품 물며 이상형을 정했고 그대로 말하기로 했지만 사실 <딱히> 인 게 맞다. 눈이 높다는 말에 부정할 필요도 없다. 눈이 높다의 기준은 뭐길래 그렇게 아닌 것을 증명하고 싶었는지. 눈이 높다 = 자기 객관화가 안된 사람 혹은 까다로운 사람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상형은 <딱히>지만 이성이든 앞으로 친하게 지낼 사람 자체든 정이 안가고 싫은 부류는 꽤 정연하게 정해져 있다는 사실.
이래야만 한다는 조건을 둔 이상형을 가지게 된다면 제외된 것들에 눈과 귀를 막고 원하는 빛을 향해 그렇게 찾아갈 가능성이 다분하지만 이러한 부분이 있으면 더 좋게 느껴지는 것 같은 흘러가는 마음이 더 좋은 것 같다.~